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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영주가볼만한곳/ 영주부석사 무량수전의 가을풍경 은행잎은 노오랗게 물들고....

경상도

by 화천비타민나무 2015. 10. 3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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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영주가볼만한곳/ 영주부석사 무량수전의 가을풍경 은행잎은 노오랗게 물들고.... 화천비타민도 가을에 물들고...

가을이 되어서 가볼만한곳이 아니라 부석사는 어느계절이든 멋진 풍경이 아늑한 마음을 품게 하는 곳이다.

일부러라도 꼭 가봐야 하는곳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가보지 않았어도 익숙한 문구들이 부석사와 연계되어 생각난다.

여행일자 10월 11일  이른아침  부석사 무량수전에 도착했다.

오로지 주말 일요일을 부석사를 가기 위해서 부석사 인근숙소에서 하루 머물며 이른아침의 부석사 풍경을 상상했었다.

지금쯤은 부서사 가는길 노오란 은행잎이 가로수를 꽉 채웠을것 같다.

우리가 도착했던 날은 은행잎이 가을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홍준교수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1박2일도 너무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그런분과 여행을 한다면

여행의 새로움이 매일매일 반복될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며 책을 구입하긴 했었다..

그러면서 다시 보게 된 부석사~ 가람배치가 그 어떤 사찰보다 안정감이 있어 푸근하다...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는데,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부석사

 

부석사 가는길~

빨간사과~ 홍옥이 눈에 띈다..

그 향기와 색갈에 안살수가 없다..

가끔은 이런 유혹쯤은 넘어가 주는게 좋치..

소백산자락길

 

부석사가는길의 은행나무가로수가 인상적이다.

 

부석사의 당간지주.

 

천왕문을 지나서~

 

한단계 한단계 지나가는 느낌..

점점더 무량수전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겸허해진다.

 

부석사 무량수전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 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건물 안에는 다른 불전과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

부석사에는 2개의 누각이 있는데 안양루와 범종각이다. 문의 성격을 겸한 안양루가 석축 위에 작고 날아갈 듯하게 지은 누각이라면 대석축단과 안양루 석축으로 구분되는 공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범종각은 지반에 견고하게 버티고 선 안정감 있는 건물이다. 특히 이 범종각은 그 건물의 방향이 여느 건물과는 달리 측면으로 앉아있다. 건물의 지붕은 한쪽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팔작지붕을 한 쪽이 정면을 향하고 있고 맞배지붕이 뒤쪽을 향하고 있는데 무량수전 앞에서 바라보면 왜 목수가 지붕을 그리했는지를 알수 있으며 그 지혜에 절로 감탄이 난다. 
 

부석사가 소백산맥을 향하여 날아갈 듯이 앉아있는데 범종각이 정면을 향하고 있으면 건물이 전반적으로 무거워보인다. 따라서 범종각을 옆으로 앉혀놓고 뒷쪽을 맞배로 처리하여 건물이 전반적으로 비상하는 느낌을 주고 답답해 보이지 않아 좋다.

 

 쌀쌀해지는 아침...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http://www.pusoksa.org/

부석사 홈페이지~

부석사에 대한 이야기는 홈페이지에서 더 자세히 보시고~

 

처음에 올라갈때는 약간 어둑어둑해서~

사진담았던걸 모두 지운듯~

내려오면서 해가 반짝 나니~ 어딜 담아도 멋진풍경이 보인다.

 

부석사는 천천히 오르면서 하나하나 보며 가는게 좋아요~

힘들지도 않고 천천히....

 

조으다~~~~

조사당과 자인당 가는길~

▶ 조사당 (국보 제19호)
조사당은 무량수전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산 중턱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작은 전각으로 측면 쪽으로 약간 비스듬히 진입하여 소박하고 간결한 느낌을 준다. 지붕은 맞배 형식으로 간단해 보이지만 넉넉하게 뻗어 나와 결코 작은 건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1916년의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장여 위의 묵서에 의하면 조사당은 고려 우왕 3년(1377)에 원응 국사가 재건한 것이다. 조선 성종 21년(1490)에 중수하고 성종 24년(1493)에 단청하였으며 선조 6년(1573)에는 서까래를 수리하였다.

 

작은 산길에 낙엽도 쓸어놓으시는 마음...

자박자박 걷는 산행길에 만난 빗자루...

보고만 있어도 휴식이 된다..

 

자인당
자인당
은 선방의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부석사에서 동쪽으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폐사지에서 옮겨 온 석불을 이곳에 이안했다
자인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다. 공포가 건물 규모에 비하여 너무 크고 측벽에 여러 가지 형태의 옛 부재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후반경에 해체 부재를 재사용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실내에는 석조 삼존여래 좌상을 모셨는데 가운데는 석가여래이고 좌우는 비로자나불(보물 제220호)이다.

▶ 석등 (국보 제17호)
부석사 석등은 無量壽殿 중심 앞 中庭 중앙에 세워져 있다. 따라서 무량수전을 진입하기 위해 安養樓 계단을 오르면 제일 먼저 바라다 보이는 위치에 있다. 또한 석등 앞에는 석등의 부속물인 방형의 拜禮石이 현존한다. 이들 석등은 배례석이 있는 부석사는 義湘(625~702)이 文武王의 뜻을 받들어창건한 이래, 그 제자들에 의해 法燈이 계속되었다. 특히 신라 하대에는 神琳 이후 번성하여 건물의 중창은 물론 많은 인재가 배출되므로써 華嚴宗을 크게 일으키면서 석등과 같은 조형물이 조성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곧 이 무렵은 신라 景文王代(861~874)로서, 부석사가 위치한 太白山은 新羅五岳 중 北岳으로 숭앙되며 비중있는 화엄종 본찰의 중심무대가 됨에 따라, 사찰 내에는 석등 이외에 大石檀, 石龍, 長臺石, 石搭 등이 이 무렵이 9세기에 조성되었던 것이다. 한편 무량수전 앞 석등 외에 또 다른 석등 郡材 2기가 더 있는데 하나는 무량수전 동쪽 언덕의 삼층석탑 앞에 위치한 석등이고, 다른 하나는 醉玄屢 앞의 옥개석과 간주석 파편 일부를 통해 알수 있다.

건축가들에게 한국 전통 건축의 특성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사찰을 말하라면 대개 영주 부석사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 그만큼 부석사는 전통 건축에서 느낄 수 있는 멋과 맛을 모두 갖추고 있다. 신라시대 의상 조사가 창건한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도 법등이 끊기지 않은 오랜 역사성, 이 절만이 갖는 독특한 공간 구조와 장엄한 석축단, 당당하면서도 우아함을 보이는 세련된 건물들, 오랜 세월을 거치며 단련된 대목을비롯한 많은 장인들의 체취가 베어날 듯한 디테일은 부석사가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으뜸을 차지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부석사의 우수한 건축미는 서양의 건축과 문화에 식상한 우리들에게 가슴이 확트일 만큼 시원한 청량제가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앞으로 전통을 계승해 나갈 방향까지도 제시한다. 이런 맥락에서 부석사는 진정한 한국 건축의 고전(古典)이라 하여도 지나치지 않는다.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들~

눈이부시게 아름다운 부석사였네요~

안양루는 무량수전 앞마당 끝에 놓인 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무량수전과 함께 이 영역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건물에는 위쪽과 아래쪽에 달린 편액이 서로 다르다. 난간 아랫부분에 걸린 편액은 '안양문'이라 되어 있고 위층 마당 쪽에는 '안양루'라고 씌어 있다. 하나의 건물에 누각과 문이라는 2중의 기능을 부여한 것이다. '안양'은 극락이므로 안양문은 극락 세계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한다.
따라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면 바로 극락인 무량수전이 위치한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다.  
 

안양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엎드려 모여 있는 경내 여러 건물들의 지붕과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스라이 보이는 소백산맥의 산과 들이 마치 정원이라도 되듯 외부 공간은 확장되어 다가온다. 부석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이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소백의 장관을 시문으로 남겼고 그 현판들이 누각 내부에 걸려 있다.

경북 영주 봉황산에 자리 잡은 부석사는 신라시대인 676년(문무왕 16) 의상스님이 창건하여 화엄사상을 펼치기 시작한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사찰이다. 부석사의 자랑거리는 이와 같은 오랜 역사와 종교적 유래뿐만이 아니다. 의상스님과 선묘낭자의 세속을 초월한 숭고한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내려오고, 가을이면 사찰 입구의 은행나무 길이 노래지고 발그레한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리는 밭이 있다. 비탈진 산지의 경사면에 대석단을 쌓아가며 가람을 배치하여 단촐하면서도 역동적인 동선을 자아내고, 소백산줄기가 춤을 추듯 너울대는 장쾌한 경관을 품은 건축 미학도 살아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목조 건축사상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아낌없는 찬사를 받는 무량수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절집으로 손꼽힐 만한 여러 요소를 간직한 절집이다.


어느 절집에서나 가장 중요한 건물은 요지에 자리 잡는다. 부석사의 중심 건물인 무량수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러 석단을 잇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무량수전은 소백산줄기가 마치 파도처럼 출렁이는 듯 시원스럽고도 웅장하여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전망을 보여준다. 1972년 봉정사 극락전에서 상량문이 발견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자리매김 되기도 하였다. 봉정사 극락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에 버금가게 오랜 역사를 갖는 건물이다. 1916년 해체 수리할 당시 서북쪽 귀공포*에서 발견된 묵서명에서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무량수전은 고려시대인 1358년(공민왕 7)에 왜구의 침략으로 건물이 불타 1376년(우왕 2)에 고쳐지어졌다. 중수 연대가 1376년이라면 적어도 150-200년 전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이 가능해진다. 

사이버문화재탐방글  출처- 

부석사를 공부하는 아침입니다.

1박2일 다시 보기 해야겠다...

이제 다녀왔으니 더 기억이 새록새록할듯~

 

안양루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태양을 따라 음영으로보이는 부처님상이 있다.

마음속에 그려지는 부처님의 모습~

 

 

처마끝을 따라 보이는 산허리들이 안개를 걷어올리고 하나둘씩 보여지기 시작한다.

 

한번 가보니~ 다시갈 자신이 생겨지는 곳~

부석사~ 참 아늑한 곳이네요~

이곳에서 기도가 참 잘되었겠다...

길을 따라 가다보면 새로운 길도 나있고

오래전 옛길도 다시 가게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멋진 여행을 하고 보니~

그 때 그마음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네요~

 

천천히 되집어 보는 세월의 흔적~

 

가만히 오래된 기둥에 기대어 보며~

세월의 무상함과 세월의 무게를 동시에~ 느껴본다....

 

부석사에서 약 200m 떨어져 있는 옛 절터에 남아 있던 두 탑으로, 1966년 이곳 부석사로 옮겨 세웠다. 탑을 옮길 때 세워 놓은 비석에 의하면 서쪽의 탑은 익산왕궁리오층석탑(국보 제289호)에서 나누어 온 부처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한다.

동·서로 서 있는 두 탑은 크기만 약간 다를 뿐 형식은 같아서, 모두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과 탑신부의 몸돌에는 기둥을 본 떠 새겼는데,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조각을 두었고, 몸돌은 모서리에만 두었다. 몸돌을 덮고 있는 각 층의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양끝에서 살짝 들려 가벼움을 실었다. 꼭대기에는 후에 보충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비록 지붕돌 밑받침이 4단으로 줄어들었으나 전체적으로 당당한 기품을 잃지않은 모습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세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잘 보존해야겠다...

마음으로라도~

 

세월품은 모든것들에 경이로움을~

 

단풍나무 씨앗도 홀씨되어 날아갈 준비를 하고~

꾸역꾸역 가을을 품어 몸에 채웁니다~

 

눈이부시게 푸르른날....

영주부석사에서~

되돌아오는길에

어찌나 화려한 날씨가 만들어 지던지..

쉽게 내려올수없었다...

 

지금쯤 노오란 은행잎이 하늘거리며 떨어지겠네요~

 

영주부석사 가을여행지로 강추...

가을이 아니면 어떠랴....

어느때이건 가볼만한 곳입니다.

 

가을을 품은 나무들~

이제 곧 겨울을 맞이하겠네요~

 

부.석.사.

마음의 점을 찍어봅니다.

 

우린 집으로 가는길

사람들은 부석사로 향하는길...

 

좋죠^^

 

내일은 남이섬으로 고고씽~~~

남이섬 은행나무 이쁘다네요^^

벌써부터 기대고 설레입니다~

 

아응~ 금요일...

불타는 금요일이라는데~

오늘은 설레는 금요일이네요~

10월의 마지막주...

어디로 떠날까..? 고민되시죠~

가까운 곳 어디라도 문밖만 나가보면 좋은 계절입니다.

 

식물도 내년을 준비하는 결실의 계절~

사람도 다람쥐도~모두~

겨울준비 단디하시네요~

 

내려오는길에 보였던 영주사과~

바로 영주사과 수확체험도 하시고~

이제 갓 익어서 맛을 보여주었던 양광이라는 사과품종

맛도 좋았네요~

 

영주여행~

영주시티투어 이용하셔도 좋을듯해요~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경북 영주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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