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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여행 / 정몽주 선생 묘(경기도기념물 제1호) 참으로 오랫만에 찾아뵙는 그곳.엮어서 가야할곳 충렬서원

서울.경기

by 화천비타민나무 2015. 5.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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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여행 / 정몽주 선생 묘(경기도기념물 제1호)  참으로 오랫만에 찾아뵙는 그곳.엮어서 가야할곳 충렬서원

연일정씨 포은공파 31대손.. 내가 바로 그 포은정모주 선생님의 후손이다.

일년에 한번씩 종친들께서 조상님께 인사하러 가자고 했던 곳이 바로 이곳인데..

왜 한번도 가 볼생각을 못했을까....

용인에서 이런 기회에 이곳에 다녀오게 될줄은 몰랐다.

초등학교 다닐때.. 파가 뭔지. 어느정씨인지. 가계보를 알아오는 숙제도 있었다.

나의 뿌리 알기.. 그런 숙제였었던듯...

간간이 누군가 질문하면 자신있게 대답했었는데 관심이 작아지다 보니.. 내 뿌리도 가끔 긴가민가 하게된다.

늘 역사 속의 그분.. 대쪽같던 그분을 생각하며 우리 할아버지셨구나...그런 생각만 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여행이였다고나 할까..

인터넷을 뒤져보고 나의 항렬을 알아보는 일.. 참으로 오랫만에 해보는 일이였다.

정몽주선생묘 그리고 충렬서원까지~ 나를 위한 여행이였던것 같다.

충렬서원은 정몽주를 배향하는 서원이다

 

정몽주 선생 묘(경기도기념물 제1호)
고려 말 충신 정몽주 선생의 묘소는 본래 개성의 풍덕에 있었다. 그가 선죽교에서 타살된 뒤, 태종 6년(1406) 3월, 풍덕에 초장 하였던 묘소를 현재 위치인 모현면 능원리 문수산 기슭으로 옮겨, 부인 경주이씨와 합장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가 순절한 뒤 풍덕에 묘를 썼다가 후에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천묘할 때 면례행렬이 수지구 경계에 이르자 앞에 세웠던 명정이 바람에 날아가 현재 묘소의 위치에 떨어져 이곳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포은 선생의 묘소는 단분으로, 상석·혼유석·향로석·망주석·문인석 등이 있었으며, 곡담·호석·난간석 등은 1970년에 추가 설치했다. 1972년에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1980년에는 묘역의 민가 3채를 이전하고, 신도비각·재실 등 대대적으로 정화 사업을 실시했다.

 

연안이씨와의 관계 경주이씨와 지금은 우리 아들인 효령대군파 전주이씨...

이건 돌고 도는 거야~

백로가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들이 너의 흰빛을 시샘하나니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이 시조는 포은 정몽주가 이성계를 문병가던날,팔순이 가까운 그의 노모가 간밤의 꿈이 흉하니 가지 말라고 문 밖까지 따라나와 아들을 말리면서 부른 노래이다.그러나 정몽주는 결국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갔다가,돌아오는 길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자객 조영규에게 피살되고 말았다.

 

정몽주의 노모가 타계한 후 선죽교 옆에 그 노모의 비석을 세웠는데,기이하게도 그 비석은 언제나 물기에 젖어 있었다고 한다.그래서 아들의 횡사를 서러워하는 어머니의 눈물이 마를날이 없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단심가>

‘이 몸이 죽고 죽어/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위 시는 포은 정몽주가 조선 건국에 동참할 수 없고, 고려에 충성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문화관광해설사님과 함께 동행해서 조금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논란많은 풍수이야기도 조금 들어보고

조금더 신경써서 관리되면 좋치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고요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은 ...

그냥 시원하다는 느낌...

그리고 엉뚱맞은 상상과 함께....

 

다음번 행사때는 후손으로서 한번 따라 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없어 보이는  이곳..아쉬움이...

 

한낮의 뜨거운 햇살에 마주하던 그날...

 

간간이 찾아오는 손님들이 보인다.

아마도 후손들이겠지....

 

 

 

 

연안이씨 저헌공파 대종회에서 만든 비석들...

설명을 듣기 전엔 무식하게도 이해를 못했지만..

지금은 쬐금 이해가 된다는....

 

근데 좀 많다....

 

정몽주의 신도비. 비문은 송시열이 썼다고 한다.

 

충렬서원 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호로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에 위치해 있다.


1576년(선조 9)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몽주(鄭夢周)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09년(광해군 1)에 ‘충렬(忠烈)’이라 사액되었으며, 그 뒤 정보(鄭保)와 이시직(李時稷)을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71년(고종 8)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11년 유림에서 사우(祠宇)를 중건하였고, 1956년에 강당을 복원하고 1972년 전체를 보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6칸의 사우, 내신문(內神門)·외신문(外神門), 동·서 협문(夾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된 8칸의 강당 등이 있다. 사우에는 정몽주를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우에 정보와 이시직의 위패를 배향하였다.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 서원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매년 3월 중정(中丁 : 두 번째 丁日)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5변(籩)5두(豆)이다. 유물로는 《포은유간집 圃隱遺簡集》·《단심가 丹心歌》와 편각 등이 있다.  백과사전출처-

 

송화가루가 많이 날려 마루에는 이미 노오랗게 물들이고...

 

담장 넘어 보이는 엄마의 마음이 돌위에 새겨져 있다.

 

 

 

충렬서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031-324-2102

 

 

정몽주 선생묘를 갔다면 충렬서원도 함께 가봐야 하지 않을까.. 당연히...

 

 

상기포스팅은 용인시청 초청으로 여행의 情답 투어 용인 문화관광먹거리를 알리기 위해 진행한 팸투어에

참가한 후에 작성한 후기글입니다.

사진. 화천비타민

 

정몽주선생묘

◎ 처인구 모현면 능곡로 45,

 031-324-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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