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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여행] 영화 스캔들 "조선남여상열지사"의 배경이 되면서 더 유명해진 운림산방

전라도

by 화천비타민나무 2012. 3. 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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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 가면 꼭 들러봐야 할곳.. 추천여행지 입니다

첨찰산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 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운 모습을 보고 운림산방이라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진도 운림산방은 국가 지정 명승 제 80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운림산방은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선생(1808~1893)이 말년에 거처하며

여생을 보냈던 화실이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연못과 정원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초가집과 소치기념관 진도 역사관등이 있고

영화 스캔들 "조선남여상열지사"의 배경이 되면서 더 유명해 졌다고 하네요~

진도 운림산방으로 산책한번 하실까요~

 

 

 

영화 스캔들에서 전도연과 배용준 그리고 이미숙이 배를 타고 룰루랄라 풍류를 즐기던 곳이..

요렇게 조그마한 연못이네요~

 

 

 

 

 

 

명승 제80호-진도 운림산방

분 류 자연유산 / 명승/ 자연경관/ 지형지질경관

수량/면적 1,367,620㎡

지정(등록)일 2011.08.08

소 재 지 전남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61번지 등

소유자(소유단체) 국.공유 ·사유

관리자(관리단체) 진도군

진도 운림산방은 넓고

울창한 진도 쌍계사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107호)이 있는

첨찰산과 남도전통회화의 산실로 유명한 명소인 운림산방 등

자연유산과 역사문화유산이 어우러진 곳으로

역사적 ,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운림산방은 조선말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이 조성하여

말년에 거처하면서 창작과 저술 활동을 하던 곳으로서「소치실록」에

따르면 큰 정원을 다듬고 아름다운 꽃과 희귀한 나무를 심어

선경(仙境)으로 꾸민 곳이다.  

 

운림산방의 유래는 세계에서 유일한 일가직계 사대의 화맥이 200여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200여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는거..참..  쉬운일이 아니지요~

소치 선생이 심은 백일홍과.. 연지(일명 운림지)인데요~

백일홍은 우람했었는데..한쪽 가지가 작년에 소실되었다고 하네요~

참으로 안타까워요~

백일홍이 붉게 피는 봄이면.. 참..멋스러울텐데..

예전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그 모습은 이제 보기 어렵겠더라구요~

아이..아쉬워라.......

 

 

한쪽이..뚝..

에고고..

 

 

 

 

옛스러운 건물들이 참..많고 넓어서.. 둘러보는데 시간이 쫌..소요되요~

 

 

진도군의 군화 동백나무가 정말 크죠~

동백은 남해안 지대에만 자생하는 꽃으로 진도 산야에 널리 분포되어 있고.. 꽃잎이 붉어 여심화라고도 부른답니다.

 

 

소치선생이 그림을 그리시던 화실이라고 합니다.

작고 아담해요~

 

요기 연지가 그리 넓지 않은데..여기서 어떻게 영화를 촬영했을까요~

저도 스캔들 영화 봤지요~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배용준과 전도연이 나눈 대사 한마디는 기억에 남습니다..

영화 스캔들의 한장면 사진이 있었는데..너무 빛이 바랬더라구요~

그래서 좀..찾아 볼라 했더니..없네요~

아쉽지만..그래도 이해를 돕기위해서..

요렇게 보면.. 아하..요기가 거기구나..............

가장 빠른 기억력의 회복.. ㅎㅎ 보는게 상책이죠~

 

요기는 소치 기념관이예요~

소치 기념관은 따로 안내를 해드려야 할것 같아요~

워낙..작품들이 많고.. 잘 전시되어 있어서요~

 

소치 선생이 기거 하시던 가옥입니다.

기거 하시던 가옥보다 작품하시던 화실이 더 멋진것 같아요~

 

어릴쩍에 보았을듯한.. 그것도 외할머니 댁에 가야만 볼수 있을것 같은..오래된 가구들..

요즘은 이런 가구들이 눈이 들어 옵니다.

온고지신.. 뭐.. 그런 생각이 자꾸 드네요~

아~~~~~~~~~~

나이 먹는가 부당..

 

 

 

소치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정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가 여기에 있더라구요~

물론 원본은 아닙니다.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꽃몽오리가 곧 터질듯..솜방망이처럼..잔뜩 부풀어 올라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세한도가..이곳엔 목판으로 남아 있네요~

 

김정희(金正喜)는 1786년(정조(正祖)10년)에 경주김씨(慶州金氏) 집안에서 태어나 1856년(철종(哲宗)7년)에 세상을 떠났다. 자(字)는 원춘(元春), 호(號)는 추사(秋史) 또 원당(院堂)이며 그 밖에도 그가 서화(書畵)에 사용한 낙관(落款)이 예당(禮堂) · 과파(果坡) · 동국유생(東國儒生) · 동이문인(東夷文人) 등의 백 수십여 개가 된다. 그는 일찍이 열혈 북학파(北學波)인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1750~1815, 《북학의(北學議)》의 저자)에게서 학문을 배웠고 1819년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규장각(奎章閣) 대교(待敎)를 거쳐 벼슬이 사조참판(史曹參判)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인 원당(阮堂)은 북학(北學)에 뜻을 두고 24세 때 동지부사(冬至副史)인 아버지 김노경(金魯敬)을 따라 연경(燕京)에 가서 당대 연경 학계의 거유(巨儒)인 원원(阮元) · 옹방망(翁方網) 등과 교우하면서 청조(淸朝) 고증학(考證學)의 의발(衣鉢)을 전수하는 등, 신학문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 《세한도(歲寒圖)》는 완당(阮堂)이 1840년(헌종(憲宗)6년)에 윤상도(尹尙度)의 투옥 사건에 관련되어 제주도(濟州道)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59세 때(1844년)의 작품으로서, 당시 청(淸)의 연경(燕京)에서 유학하고 있던 제자 이상적(李尙迪)에게 그려 보낸 일품이다.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이 권세를 따르는 세속과는 달리 문하의 구의(舊誼)를 잊지 않고 궁경(窮境)의 완당(阮堂)에게 정의(情誼)를 다하는 데 감격해서 세한(歲寒)(겨울에 홀로 푸른 소나무)에 비유한 그림이다

 

 소치선생님의 영정실을 뒤로 하고 오니.. 뒷마당엔 봄볕을 잔뜩 받은 야생화가 곱게 피어 있습니다.

남도의 봄.. 진도의 봄이 활짝 피었네요~

 운림산방 061-543-0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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