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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임본문화

마음의 정원(茶)

by 화천비타민나무 2010. 9. 1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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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 사로잡는 ‘일본문화의 힘’

다양한 장르·메시지에 자생력도 갖춰


    이제는 개방 운운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 로 일본 대중문화는 한국시장을 상당부분 잠식하고 있다. 만화, 애니메이션, 전자오락 의 경우 일본 것이 70% 이상으로 추산될 정도다.

대중음악과 영화도 수입 금지 품목 이지만 개인적으로 들여온 물건과 불법 복 제품이 유통되고 있어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

왜 일본 대중문화는 한국 시장을 뒤흔들 정 도로 위협적인가. 우리가 일본문화에 제대 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아야 한다.

일본 대중문화의 최대 무기는 풍부한 다양 성. 예를 들어 만화의 경우 초등학생용을 비롯해 청소년용 청년용 회사원용 직장여성 용 30대 주부용 아저씨용 등 한국에서는 상 상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장르를 갖추고 있다.

대중음악도 60년대 유행했던 포크 록 에서 헤비메탈, J-POP, J-ROCK, 비트 계 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공 존한다.

창작자·업자간 협조체제도 큰 힘

반면 한국 대중문화는 다양성 부족이란 심 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대중음악은 10대 취향의 댄스음악 일변도이고, 만화는 초등 학생용 만화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만화 가 대부분이다. 애니메이션에 이르면 「코묻 은 돈」을 상대하는 유치한 수준의 작품 외 에는 찾기 힘들다.

어떤 만화, 노래를 즐길 것인지는 수준의 차이가 아니라 취향의 차이다. 따라서 다양 할수록 문화는 강해진다. 우리 대중음악은 10대 취향의 댄스음악이 지배하지만 한국인 이라고 모두 이런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아 니다.

이런 점에서 일본 대중문화는 우리의 가장 취약한 부분, 즉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일본이 한국보다 20배 정도 큰 거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시장의 다양한 요구를 읽어내는 마케팅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에 기인한다.

더욱이 한국 시장은 일본에는 「플러스α」다. 일본 에서 수익을 올릴대로 올린 뒤 한국에 상륙 하기 때문에 좁고 작은 시장에 구애받지 않 고 다양한 작품을 쏟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일본 대중문화의 두번째 강점은 테마에 있 다.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 「일상」이 일본 대중문화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이는 「슈 퍼맨」 같은 영웅물과 「미키마우스」 같은 개 그물밖에 없는 미국 대중문화의 틈새를 파 고드는 강력한 무기다.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진보가 멈춘 선진국 사회의 사람들 앞에 던져진 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일상」이다. 오늘이 어 제보다 별로 나아지지도 달라지지도 않는 사회인 것이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무료한 사람들은 「응원가」를 필요로 한다. 일본 대 중문화는 이런 일상을 포착하고 메시지를 던지는 힘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상품을 만 들고 있다.

「원령공주」, 일본에서 12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유명 애니메이션이다. 천하의 디즈 니도 놀랬던지 이를 미국으로 수입하기로 하고 일본의 제작사와 협력관계를 맺었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대표적인 메시지는 「삶은 원래 힘든 것이다. 그렇지만 살아가 자」는 것이다. 세계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 상한 일본 영화 「우나기」와 「하나비」도 이 런 메시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자생력도 큰 무기다. 일본 대중문화 업계는 정부로부터 별다른 지원이나 보조금을 받은 적이 없다. 말하자면 「들판에서 자라난 잡 초」처럼 자생력으로 성장해왔다. 자생력의 원천 가운데 하나는 크리에이터를 우대하고 키워내는 힘이었다.

현재 가수를 관리하는 프로덕션은 대부분 월급제를 택하고 있다. 히트곡을 못내도 가능성이 보이면 몇년이고 월급을 지급하며 키운다. 생계가 해결돼야 작품이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최근 활기를 띠고 있는 일본 영화업계의 비 밀도 간단하다. 재능이 있다면 상대방의 경 력을 묻지 않고 감독을 맡기는 「업계의 문 호개방」 덕택이다.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그 랑프리를 수상한 기타노 감독은 코미디언 출신이고, 「Shall We Dance?」로 미국시장 을 강타한 스오 감독은 원래 싸구려 에로영 화 감독 출신이다.

또한 창작자와 업자간의 「공동체적 연대」도 일본 대중문화를 키우는 토양이 되고 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지만, 한국의 경 우 일부 만화출판사는 만화가에게 지불할 인세를 줄이기 위해 판매 부수를 속인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반면 일본에는 인세 분쟁이 전혀 없다.

이런 풍토에서 생겨나는 출판사와 만화가의 공동체적 연대가 좋은 작품을 쏟아낸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 이다.

일본 문화계는 창작하는 사람을 제대 로 대우하지 않는다면 대중문화 업계의 성 장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 다.

김지룡〈문화경제평론가〉
 
 
 
 
 
 
2. 오타쿠(お宅) 일본 문화에서 그 위치 
위에서 설명한 오타쿠들은 어디에서 활약하고 있는가? 어디에서 일본 문화를 이끌고 있는가? 우선 애
니메이션 분야에서 안노 히테아키를 비롯한 가아니스 멤버들이다. 다른 부분을 살펴보자. 올해 들어 일
본영화 수입이 허가되면서 우리는 일본 영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더구나 최근에 들어
일본영화는 각종 영화제 그랑프리를 석권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런 모든 작품들은 30대의
젊은 감독들이 수상했다. 그 주자들은 오타쿠 감독들이었다. 1996년 일본 국내 최고의 흥행작 "함께 춤
출까요?(Shall we dance?)"의 감독 스오 마사유키(41세), 프랑스에서 극찬 받은 “해변의 신바드”의 감
독 하시구치 료오스케(35세) 그리고 “스왈로테일”의 아와이 순지(33세). 이 중 이와이 마니아를 거느
리고 있는 이와이 순지 감독을 보자. 그는 그의 영화 "스왈로우테일"에서 홍콩의 느와르, 일본의 전통
영화 기법, 할리우드 영화의 모든 기법을 교묘히 결합해 영화를 완성했다. 이와 같은 강정은 이들이 오
타쿠로서 모든 영화를 기억하고 만들어 정리해낸 "영상문화"의 오타쿠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소한 미술계에도 한 명의 화가가 주목받고 있다. 무라카미 다카시(36세). 그는 일본 문화를
예술에 투영시킨 화가로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하겠다. 그는 1960년대 미국의
'웬디 워홀'이 대중적인 회화를 대량 생산 기법으로 작품화 한 것처럼 무라카미는 오타쿠의 기호와 감성
을 작품화 한 것이다. 또한 '미술사 최초의 예술가에 의한 오리지널 캐릭터인'인 'DOB군'은 만화풍의 회
화인데 풍선 조각이 되어 화랑이나 미술관에 전시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T셔츠의 디자인으로 채용되어
의류 잡화점에서도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이 세계적인 문화 중 하나는 오락이다. 이 게임 시장에 등장한 오타쿠가 있다. 일본 게임업계의
천재라 불리는 '이노 겐지(27세)'이다. 그는 비즈니스와 소프트웨어 업계의 귀재로 불린다. 그의 첫 작품
'D의 식탁'은 전 세계적으로 80만 매가 판매되었다. 단순히 80만 매라는 판매율이 아니다. 그는 우리 흔
히 '2D'로 보는 게임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색다른 게임을 선보인 것이다. 이는 세계 최초로 모든 것
을‘3D’로 제작하는 것을 보였다. 또한 이 게임은 소리로 게임을 풀어 나가는 것이다. 소리로 적의 출
현을 감지하고 게임을 풀어 나가는 것이다(;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97년 발표한 "리얼
사운드 바람의 리그래프"는 영상 없이 소리만을 가지로 하는 게임을 만들어 냈다. 간단히 말하자면 맹인
도 할 수 있는 오락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이노 겐지'는 고등학교 중퇴의 학력 소유자이다. 그는 학교
가 재미없다고 그만두고,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영화
를 보며, 게임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재미있는 게임이 없다고 문을 나서서 게임 업계에 뛰어
들었다. 사회에서 이단아로 몰리던 그 였다. 그는 오타쿠였기 때문이다(물론 학력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게임업계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와 같은 오타쿠 동료들과 함께 'WARP'라는 회사를 설
립하고 최고의 게임을 만들어 냈다. 그 공로로 그는 일본 통산대신이 주는‘멀티미디어 그랑프리’를
획득했다. 지금 그는‘D의 식탁2’를 발표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의 중흥기를 이룩했던 것은 '우주전함 야마토(1974년)'이다. 이후 만화의 발전을
엄청났고, 이때의 중·고생들은 영상 세대였다고 일본은 말한다. 그들 가장 최초의 영상 세대들이 지금
의 30대가 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영상에 빠져 오타쿠가 되어 버린 이들이, 한마디로 학교에서 이단
아, 문제아들로 보였던 이들이 일본 문화를 석권하고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3. 오타쿠(お宅)의 등장 배경 
일본에서 오타쿠가 나타난 것은 1980년대 이후 등장했다. 이들은 전후 최고조에 달한 물질적 풍요와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은 기성세대와 다른 문화 현상을 보였고, 특이했다. 이전 세대와는 다른, 그
래서 일본은 그들에게 '신인류(新人類)'라는 명칭을 붙여 주었다. 이들은 대중문화의 중심이며, 소비 문
화에도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오타쿠들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이 오타쿠의 등장은 일본의
오래된 전통 문화라 할 수 있는 장인정신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고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다. 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를 통일한 이후 사농공상(士農工
商)의 체제가 약해진 뒤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런 문화적 정신이 오타쿠들에게서는 보여진다. 그리고 이
들을 만들어 낸 것은 교육 이였다. 그러나 교육이 잘되어서 만들어 진 것은 아니였다.
지금도 일본의 교육은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는 식의 교육이다. 즉 영어를 잘하면 영어 숙제는 적지만
과학을 못하면 과학 숙제가 많아진다. 이로써 아이들은 평준화되고 서로 비슷비슷해진다. 그러나 이런
교육은 한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는 아이들의 개성은 살리지 못하는 교육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럼
으로써 아이들은 독창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런 비 인간화 교육은 점점 문제가 되고 6, 70년대 사회
문제로 대두되게 되었다. 학생들의 등교거부, 교내 폭력, 가정 내 폭력 등 병리 현상을 일으켰고, 경찰이
동원되자 80년대에는 음습한 문화. 요즘 우리 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이지메'로 발전하게 된다. 이
는 음습하고 집단적이며, 매우 폭력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부모들도 아이들의 재능을 찾아
칭찬하기보다는 '공부해라'라는 말을 하게 되고 아이들은 점점 소외되어 갔다. 점점 학교는 소외의 대상
이었고, 그들에게 있어서 학교 공부는 지겨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연구와 몰두가 있었다. 그래서 인지 오타쿠들
중에서 학교 교육과 관련된 것을 하는 이는 하나도 없다고 한다. 클래식이나 특이하게 학교 공부에 관
련된 이들에게는 오타쿠라고 부르기보다는 조예가 깊다라고 말하는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행위에도 한계가 있었다. 남과 이야기하고 싶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싶다. 그래서 그들은 비평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느꼈다. 이렇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는 것을 타인과 공유하려는 행위였다. 왜 오타쿠들은 만화 혹은 애니메이션, 대중 음악을 두고 열
띤 경쟁적 토론을 펼치는가? 이는 위에서 이야기한 일본의 학교교육의 문제에 있었다. 일본식 교육에서
는 토론이라는 수업 자체가 없다. 토론을 배우지 못한 이들이 대학에 들어가 느닷없이 니체의 철학을
토론하고 마르크스를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처럼 알기 쉽고 재미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토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지 않겠는가.
4. 야마토(ヤマト)와 함께 날아오른 오타쿠 
일본에서 오타쿠가 일어나게 된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즉 그들이 만들어 낸 서브 컬쳐가 일어나게 된
계기 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는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우주전함 야마토'였다.
영상 문화의 전환기 70년대. 일본의 아이들용, 오락의 대상이었던 '애니메이션, SF, 특수촬영, 순정만화'
가 성장한 시기이다. 이것들이 서브컬처로 상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문화에 대한 이해는 단편적이
고 협소했다. 그러나 이런 중에 애니메에션에 대해서만은 어떻게는 수용하려는 붐이 일어나게 되었다.
바로 '우주전함 야마토(宇宙戰艦 ヤマト)'의 방영 이였다. 우리 나라에서도 한때 '날아라 V호'라는 이름
으로 방영되었다.
당시 우주전함 야마토는 시리즈가 당초 TV를 통해 방영되었던 것은 1974년. 이후 많은 선구적 애니메
이션이 걸어갈 길을 암시하듯 26회를 마치고 중도 하차 당했다. 기존의 애니메이션 시청자인 어린이들
에게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을 들자면 '에반겔리온'의 선배라고 볼 수 있다.
이 야마토는 압도적인 정보량을 지니고 있었다. '마징가Z'를 비롯한 기존의 애니메이션들은 30분 짜리
로 한편에 영웅이 악당을 물리치고 완결되는 드라마 형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야마토는 전편을 통해
서 스토리가 이어지는 스타일 이였다. 장대한 SF설정을 배경으로 여러 가지 수수께끼가 최종회에 가서
야 풀리는 한편의 대하드라마 였다. 또한 치밀하게 그려진 전함들을 비롯한 기계 디자인. 사춘기 청소년
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일종의 파격은 애니메이션의 시청자의 연령대를 끌어올리는데 충분했다.
이전에도 있었던 젊은이들 사이의 애니메이션 오타쿠들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선구자적인 사람들로
수가 매우 적었다. 그러나 야마토의 결과로 애니메이션은 유치한 아이들용 수준이라는 일반적인 상식을
뒤엎어 버렸다. 야마토를 기점으로 애니메이션은 젊은이들의 서브 컬처로 자리들 잡았다.
야마토의 인기는 텔레비전 방영이 끝나면서 서서히 일어났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열광적인 야마토
오타쿠들(대게 'SF 오타쿠'나 '애니메이션 오타쿠' 였을 것이다.)의 요청으로 재방영하기에 이르렀다. 그
리고 1977년 '우주전함 야마토' 극장판이 완성되어 세상에 공개되었다. 젊은이들은 하루 전날 극장 앞에
서 장사진을 치고 기다려 여론은 놀라게 했다.
이 야마토가 가져온 것은 무엇인가? 이는 곧 만화를 좋아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
닫게 해준 것이다.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에 열중하다가 어느 샌가 창피해져서 그만두게 했던 무언의 강
요가 사라졌다. 이는 창피해 하지 않고 당당히 애니메이션을 열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었고, 이는
1980년대 대량의 오타쿠 발생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러나 오타쿠 문화가 점점 확산되어 감에도 불과 하고 일본에서는 오타쿠를 들어내 놓고 지칭하기를
꺼려한다. 이는 묘한 분위기이다.
5. 살인(殺人) 그리고 오타쿠(お宅)에 대한 편견 
'오타쿠'란 말이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만화 잡지인 '만화 브리코'의 1983년 6월호에서 부터였다. 이 잡
지의 '오타쿠' 연구라는 제목의 기사가 처음의 발단이었다. 여기서 그들은 어둠 속의 마니아로 표현되어
지고 있었다. 즉 별종으로 취급당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신선한 이미지를 준 것도 부인 할 수 없다.
6년 뒤인 1989년, 일본 최대의 엽기적인 연속살인 사건인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이 발생했다. 성적 만
족을 위해 네 명의 유아를 죽인 희대의 살인마 미야자키의 방에서 발견된 것은 방안을 가득 메운 비디
오 테이프와 만화였다. 그리고 그가 속한 비디오 동호인회의 멤버들이 서로를 오타쿠라고 부르던 사실
도 밝혀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타쿠라는 사람들이 별종의 우수운 사람들에서 사회의 쓰레기로 불리
게 되었다.
주간 요미우리(1989년 9월 10일 호)가 '오타쿠 족'이라는 기사를 내면서 "애니메이션이나 PC, 비디오
등에 몰두하며, 같은 취미의 동호인 회에서도 상대방과 거리를 두기 위해 서로를 이름이 아니라 '오타
쿠'라는 이인칭 대명사로 부르는 소년들을 말한다"고 해설하였다.
이후 오타쿠족은 '연애나 패션에 관심이 없는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의 청소년'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 표현 하지면 '쓸데없고 가치도 없는 일에 열중하는 기분 나뿐 인간들. 사회적 쓰레
기' 이었다. 지금도 국영 방송인 NHK 는 오타쿠라는 말을 방송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일본사람들에게 오타쿠에 대해 물어 보면 다음과 같은 인상을 갖는다고 한다. "두툼한
안경에 배가 나오고 뚱뚱한 사람들. 연애도 못해 본 사람. 주말이면 종이 가방을 들고 일본 최대의 전자
상가인 아키하바라를 배회하는 사람, 변태" 라는 이미지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실재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며 사실이다. 이들은 대체로 고학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외
향적이고 동성 그리고 이성 친구도 많았다는 것이다. 또한 일단 고학력이 아니라 해도 독서광이거나 한
분야에서는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들이 단순히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하지 않는 다
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들은 열광하지 않는다. 보통 팬들은 모이면 열광하게 된다. 그들은 콘서트나 경기장에 모이면
열광하고 때로는 사상자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50만 명이 모이는 오타쿠들의 축제인 '코미케'나 '도쿄
게임쇼'에서 사상자가 난적은 한번도 없다.
6. 에반겔리온(新世紀 エブアソゲリオソ);오타쿠(お宅)들의 힘과 한계  
오타쿠는 일본문화를 이끌어 나가는 원동력이다. 이는 사회의 많은 부분에 걸쳐 보여진다. 그러나 이들
에게도 한계가 있다. 월트 디즈니를 눌러 버린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대부 '미와자키 하야오' 그는 그의
일생에서 마지막 작품이라고 공헌하며 내놓은 역작 '월령공주(もののけ ひめ)'를 1997년 개봉하여 97년
말까지 1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일본 최고의 흥행영화로 떠올랐다. 배급 수입액은 100억 엔을 넘었
다. 이는 영원히 깨지지 않을 거라고 믿는 E.T의 기록(98억 엔)을 제치고 역대 흥행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보다 더 대단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바로 신세기 에반겔리온(新世紀 エブソゲリオソ)이다.
물론 TV 방영 때에는 겨우 7%선 정도밖에는 유지하지 못했지만 방영이 끝난 후 인기가 올랐다. 그리
고 매스컴이 놀란 것은 400억엔이 넘는 관련 상품들이었다. 실제로 엄청나게 팔렸다.
그런데 여기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에반겔리온 영화 극장판의 총관객은 30만 그 중에서 20만은 사전
예약. 세 장의 사운드 트랙 앨범은 모두 20만장씩 팔렸다. 또한 LD를 포함해서 비디오 테이프는 22만장.
필름 북은 30만 부가 팔렸다. 여기서 보여지는 것은 '에반겔리온' 상품은 최소한 20만장은 넘지만 30만
장 이상은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오타쿠 시장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세계 최대의 동인지 시장 '코미케'에 모이는
인구는 40만 명. 즉 애니메이션 마니아와 오타쿠의 한계는 이것이다. 에반겔리온은 일본의 오타쿠를 거
의 모두 사로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미야자키처럼 1200만 명의 관객은 동원하고 있
지는 못하다는 것이다.
이를 다시 분석하면 오타쿠의 시장은 매우 고정적이고 대단하다. 에반겔리온 캐릭터 인형 가운데 레이
(レイ)인형이 있다. 이 캐릭터 인형 중에 200만원 짜리 인형이 있다면 믿겠는가? 사실이다. 실제로 있고,
이것을 사간 사람들도 꽤 된다. 즉 이들 오타쿠들은 자신의 것에 대해서 투자하는 것은 열성적이지만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타쿠의 힘이자 한계인 것이다. 그것을 잘 알았는지 에반겔리온
캐릭터 상품을 만드는 '반다이' 사도 인기가 있었음에도 불과하고 어린이용이나 초등학생을 위한 상품은
만들지 않았다.
結  論
지금까지 오타쿠를 중심으로 일본문화를 간단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글에 부족함을 많이 느낄 것
이다. 이는 글쓰는 이가 한 가지에 대해서 쓰지 못해서이다. 바로 '인디즈'문화에 대해서 이다. 이 인디
즈 문화도 일본 문화의 큰 축이다. 오타쿠가 대중문화의 중심에 서있으면서 암중에 있다면 '인디즈'는
그 주변에서 성장하고 대중 앞에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인디즈에 대해서는 차후 기회가 생기
면 다시 써 보려 한다.
또한 에반겔리온의 효과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드리지 못했음을 밝힌다. '애반 신드롬'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효과를 가져온 '에반겔리온'은 내용이 방대하고, 자료를 제대로 정리 못해 그냥 단순히 마
케팅 차원으로만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에반겔리온'에 대해서 쓰려 한다면 다시 새로운 글을 써야 할
정도로 그 내용과 효과가 방대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오타쿠가 생긴 것은 1980년대로 위에서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시각을 볼 수도 있다. 현재 일본
문화를 이끌고 있는 오타쿠는 훨씬 이전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일본을 일하는 개미. 일개미라 부
를 던 시절, 그들은 아마 일에 오타쿠가 되어 버린 세대. 즉 80년대 경제적 풍요를 이루었던 세대들이
바로 '일 오타쿠(?)' 현재 오타쿠의 원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위에서는 오타쿠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보았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진짜 폭력적
이고, 혹 이상할 정도로 내성적이고 사회에 도움이 전혀 안 되는 것을 연구하는 이도 있다. (물론 시각
의 차이겠지만) 예를 들자면 'SM'을 연구하거나, '살인'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 간혹 이들이 사회적 문
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연구력은 놀라울 정도라고 한다. 에반겔리온의 오타쿠들 중에
서는 성서 속에 나오는 '양자 물리학'을 연구하고, '사해문서(死海文書)'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
다.
각설하고, '오타쿠'라는 말은 아직도 일본에서는 부정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최근 한 사람이 스
스로 오타쿠임을 선언하고 나선 사람이 있다. 바로 '에반겔리온'을 만들어 낸 '가이나스'사(社)의 사장 '오
카다 도시오'이다. 그는 지금 현재 도쿄 대학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그는 오사카 대학을 단 삼일만에
중퇴한 사람이다. 그가 지금 대학 강단에 서 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지금까지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있게 한 것이 누구냐고,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만큼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이 무엇이 있냐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리고 도쿄대생을 모두 오타쿠로 만들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앞으로 일본에서 오타쿠의 힘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의 오타쿠들을 보면서 우리 나라에도 오타쿠같은 존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쉽게
단정짓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편견이 앞서는 사회이다. 사회적 관습이 지배하는 것
이다. 비교적 자유로운 일본에서도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오타쿠가 우리 나라에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
들다. 하지만 꼭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많은 없다.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의 교육 수준(?), 교육 문
화는 일본의 것과도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더 안 좋을 지도... 일본의 오타쿠가 안 좋은 교육환경 속에
서 자라난 이들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오타쿠를 육성해야 겠다는 소리는 아니다. 이 글을 읽고 혹 그럼 '우리도 오타쿠를 육성하
거나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틀린 말이다. 이들은 자생적으로 나타났지 누구의 강요나 제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게 아닌 것이다. 위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아마 관료주의에 빠진 사람이거나,
혹 우리가 잘 욕하는 고위직의 딱 막힌 사람들일 것이다.
앞으로 일본 문화의 개방에 맞추어 오타쿠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또한 우리는 이들을 어
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리고 혹 우리 나라에 오타쿠들이 있다면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그리고 사족(蛇足)이지만 우리가 교사가 되었을 때, 우리의 교육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들이 잘되어 오타쿠가 된다면 다행이지만 사회문제의
근원이 된다면....

애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애니메이션을 쫓는 데서 출발했으며, 영화사전속의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이라는 형태만 제외되었을 뿐, 작품들이 미국에서 계속 수입되었기 때문에, 교육용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만 그 명맥 을 이어갔습니다.
일본에 처음으로 공개된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백설공주" 는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폐허가 되어 버린 마을에서 눈부신 컬러로 나타난 디즈니 만화는 문화적 충격 이었으며, 그 이후 디즈니에 사로잡혔던 아이들이 성장하여 애니메이션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56 년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기업 수준의 대규모 애니메이션 제작에 뛰어든 토에이동화는 스스로 "동양의 디즈디"를 목표로 하여, 설립한 후 2년만에 일본 최초의 장편인"백사전"을 완성 시켰고, 그것을 시작으로 매년 일본과 동양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l~2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정기적으로 제작 공개했습니다.
또한, 디즈니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데즈카 오사무도 61년에 무시프로덕션을 설립 하였고, 1963년 "철완 아톰"을 만들어 방영하였고, 토에이도 "늑대소년 겐" "소년닌자 바람의 후지마루"(64년), "우주패트톨 홋파"(65년) 등 TV용 작품을 제작, 본격적으로 TV애니메이션 시대 로 접어듭니다..
출발은 늦었지만 짧은 시간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일본 애니메이션은 60년대에 다수의 작품이 미국에 방영되면서 재패니메이션을 알리게 되었고, 제작 기술에는 뒤떨어 지지만 강한 스토리 전개와 치밀한 묘사, 리미티드 기법에 의한 독특한 화면효과 등으로 세계소년,소녀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TV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애니메이션 문법을 구축해 나가는 일본은 세계시장을 석권해 가고 있습니다.동시에 일본 최대의 대중문화 수출상품이 되고 있고 영상 수출상품의 60%를 점유하는 등 만화 및 만화관련 분야 에서는 일본이 최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지의 경쟁작품이 더 많은 미국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를 예찬하는 팬들이 거듭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 TV 방송사들도 일본 애니메이션 대한 새로운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일본이비록 애니메이션 산업의 침체기를 맞이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외국 시장을 개척할 막대한 자료를 충분히 축적해두고 있습니다.

 

 

일본 대중문화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새 정부가 조만간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엔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슬램덩크>나 <짱구는 못 말려>를 안 읽은 사람이 오히려 바보가 되는 현실에서,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고 안 하고의 문제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청소년 문화에 미친 일본 대중문화 상품의 역할과 기능을 한번 살펴보자

한창완·세종대 영상교육원 교수 (신방 86)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은 이제 완료된 문화적 상황이다. 이미 개방된 시장을 형식적으로 문을 연다고 발표할 뿐인 것이다. 일본 만화는 국내 출판만화 시장의 공식·비공식 합계 50%의 시장 점유율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일본 영화, 특히 저패니메이션으로 불리우는 일본 애니메이션은 일본에서 출시된 시점과 약 30일 정도의 시간적 차이로 국내에 전파되어 문화 마니아들의 열성적인 추앙을 받고 있다. 또한 일본 비주얼록 가수의 죽음이 일본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국내 청소년들의 자살 욕구까지 자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이 논의된다는 것부터가 실재 문제 상황인 것이다.

일본 문화는 이미 개방되었다?

   일본 대중문화가 우리나라만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문화 상품을 통한 ‘대동아공영권’은 이미 확보되었다고 말한 동경대 교수의 주장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상품 자체를 포함한 문화 상품의 기획·제작·유통·배급의 노하우가 일본 중심으로 형성되어, 토탈 엔터테인먼트의 방식까지도 일본의 스타 시스템을 그대로 활용할 정도라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동아시아권의 문화 상품 상권은 이미 일본을 중심으로 구축되고 있으며,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캐릭터 산업과 게임소프트웨어 산업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에 이르기까지 일괄적인 산업의 관리 시스템이 일본 중심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다. 중국과 대만은 이미 출판만화와 애니메이션 시장의 대부분을 일본에 넘겨 주었으며, 특히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홍콩·태국 등의 동남아 시장은 자국의 문화 상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본 문화에 흡수되어 있다. 실제 가장 큰 결과론적 문제점은 이러한 문화적 상황을 바라보는 서양 국가들의 관점인데, 그들은 일본 문화의 오리엔탈리즘이 동양을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나아가 일본의 기술력에 기반한 테크노 오리엔탈리즘이 미래 사회의 새로운 기준으로 설정되어 가고 있음을 예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 대중문화의 확산은 동남아 시장의 사례와는 차별적인 구조를 갖는다. 일제 시대 이후 국내의 일본 문화에 대한 정서적 반발은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수입을 공식적으로 거부하게 되었고, 개방되지 않는 일본 문화는 80년대 후반부터 도래한 뉴 미디어의 통합된 네트워크를 통해 비공식적인 국내 유입 경로를 독점하게 된다.

문화 마니아들의 정복 대상

   일본 문화가 개방되지 않는 비공식적 시장의 조건이 바로 국내 문화 마니아의 한정적인 정보 추구 욕구를 자극하게 되었고, 그러한 문화 마니아들의 끊임없는 정보 추구 욕구는 새로운 문화 지형과 문화 계급성을 창출시키게 된다. 실제로 기존 문화에 대한 계급성은 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의 상대적 질에 의해 결정되었으나, 후기산업사회의 포스트모던한 개인주의 시대에는 문화를 정보로 대체하고, 그러한 정보를 인지하는 마니아적 속성이 새로운 문화적 계층을 만들고 고착화시키게 된 것이다.
   문화 마니아들의 이러한 정보 추구 속성은 결국 문화 마니아라는 계층의 차별적 존재 정당성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 그러한 문화 정보의 차별적 소유와 그에 대한 공개는 특히 사이버 공간내의 계급성을 잉태하게 된다. 사이버 공간의 새로운 계서체계(hierarchy)는 결국 문화 마니아들의 정보 추구 욕구를 경쟁적으로 강화시키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화 정보 추구의 논리적 체계의 한가운데 일본 대중문화는 놓여 있다.
   기성 세대의 유전적인 반발감과 적개심에 의해 공식적인 시장에 등장하지 못한 일본 대중문화는 실제로 감추어진 문화 정보로 규정되었고, 그러한 잠재 정보의 시대적 가치는 마니아들의 정복 대상으로 위치하게 된 것이다. 일본 대중문화는 결국 형식에 밀려난 변방 문화의 신주류가 형성시킨 하위 문화이지만, 이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적 체제의 우월성이 잠재된 문화의 디자인과 포장력을 향상시켜 부상 문화에 대한 새로운 반기로 형성된 문화인 것이다.
   일본 대중문화는 동일한 오리엔탈리즘 속에서 서양,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사대주의적 오리엔탈리즘의 정수로 분석되는 형식성을 갖는다. 일본식 사대주의적 오리엔탈리즘은 비주얼록이라는 독특한 대중음악 장르를 선보이는데, 이러한 시도 역시 국내 대중음악계를 조율시키며 국내 팬들의 차별적 마니아층을 형성해 낸다. 애니메이션 역시 스튜디오 지브리로 대표되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의 작품 역시, 이제 월트 디즈니의 브에나비스타에서 직접 배급하기 시작하여, 국내 개봉 일정만 기다리고 있는 정도이다.
   일본 대중문화는 전제한 것처럼 일종의 정보이다. 초등학생들이 일본어를 자습하고, 자기 학급의 누구보다도 먼저 저패니메이션이나 일본 만화잡지를 읽은 다음, 학급의 동료나 PC 통신에 글을 띄워야 문화 마니아로 대접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대중문화의 파워엘리트 구조에 대한 새로운 저항이며, 신주류로 불리우는 혁명적 시도이다. 일본 대중문화의 차별적인 상품성은 바로 이러한 구조적 메커니즘에 기반한 신세대의 소비 행태와 연계되며, 특히 문구류·완구류·팬시류 등의 상품에 캐릭터를 내재시킨 특유의 전략으로 시장을 확장해 가고 있다.

일본 대중 문화 개방에 대한 견해

글쓴이 : 얼쑤! 국어선생 번호 : 108조회수 : 332005.07.15 10:59

<논제> 다음은 일본 대중 문화의 국내 유입 현실을 보고(報告)하는 내용이다.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해, 찬성 혹은 반대의 입장을 선택하여 1200자 내외로 논술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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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중 문화 중, 국내에서 압도적으로 경쟁력이 센 분야는 만화와 만화 영화입니다. 이미 60년대부터 국내 시장에서 유통되기 시작했던 일본 만화 번역본 및 사본은 10여 년 전부터 ‘드레곤 볼’, ‘시티 헌터’를 위시하여, 최근에도 ‘슬램 덩크’라는 만화가 250만부 넘게 팔리고 있습니다.
가요 부문 역시, 해외 여행 자유화 이후에 일본 음반 밀반입이 급속도로 늘어나서 레코드 가게에서는 일본 음반을 공공연히 판매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또, 압구정동이나 대학가 등에서는 하루 종일 일본 노래만 틀어 주는 카페가 성업중입니다. 국내 가요계에서도 일본 음반을 자신의 음악적 전범(典範)으로 삼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많은 가수들의 곡이 표절 판정을 받거나 공륜의 심의를 받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방송의 경우에도 일본 방송의 프로그램을 모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모( 某) 방송국의 ‘OO OO 만들기’를 비롯하여, 퀴즈 게임 중 70% 이상이 일본 것을 본뜬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밖에도 10대의 오락, 연예 정보 프로그램 대부분이 일본 것을 모방하고 있습니다.
일본 문화의 국내 진출에 첨병 역할을 하는 것은 일본 위성 방송입니다. 실제 위성 방송 시청자 수는 300만 명을 넘어섰고,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일본의 패션 잡지 및 패션 스타일 역시 빠르게 유입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오락 게임기에서 출발하여 TV 애니메이션에서 크게 성공한 ‘포켓 몬스터’의 캐릭터 상품들이 국내 시장에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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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답안】

<찬성하는 경우>

예로부터 문화를 꽃피운 나라들은 다른 나라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여 자국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반면, 자국 문화 우월주의에 빠져 문화적 폐쇄주의를 견지하고, 배타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던 나라들의 문화는 진보하기보다는 퇴행의 길을 걸어 왔다. 한때, 세계 문화의 중심권으로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이슬람 문화가 동양의 신비로운 문화와 서양의 합리적인 문화의 접목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일본 문화의 전면적인 국내 개방 허용에 대한 문제는 오랜 시간 동안 논쟁이 지속되어 왔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개방에 반대하고 있다. 그들의 반대 이유에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민족 감정에 치우쳐 있다.또한, 그들은 일본 문화의 퇴폐성과 일본 문화의 개방에 따른 일본 자본의 유입을 위험시하며 개방을 반대하고 있다.
우리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였다는 국치(國恥)를 쉽게 망각해서는 안 되겠지만, 일본과 정치적, 경제적 교류가 활발한 지금의 상황에서, 오로지 일본 문화 개방만을 금기시하는 것은 이율배반적 논리라고 본다. 또한,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한 논쟁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은 일본 문화를 쉽게 접해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 생활의 일부에는 알게 모르게 일본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으며, 공적인 것을 우선시하고, 질서를 잘 지키는 일본의 선진 문화는 오히려 우리가 본받으려 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주의의 자존심만을 앞세워 일본 문화 개방에 반대하는 태도는 현실과 동떨어진 전근대적 사고이다.
또한, 일본 문화가 퇴폐적 문화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왜색(倭色) 문화 논리도 재고되어야 한다. 인간의 보편적인 성정(性情)에 유익한 문화와 해로운 문화를 소수의 입법 관료자가 재단할 수는 없다. 저급한 수준의 일본 문화가 유입될 것이라는 논리는, 동일한 수준의 미국 문화에는 관대하면서 일본의 문화에만 적용하는 하기에 모순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 문화만이 우리의 도덕적 타락을 가져온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물론, 우리의 문화적 비판 의식과 민족 문화의 정체성이 더 확립되어야 하겠지만, 우리 국민의 문화 수준과 문화 비평 능력은 옥석(玉石)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 아니다. 그러므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식의 기우(杞憂)는 스스로 우리의 문화 수준을 폄시하는 발상이라 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본의 문화 침투가 곧 일본 자본의 침투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은 문화 상품뿐만 아니라, 기술 산업 자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분야에서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그리고 경쟁력 있는 고(高) 부가 가치 상품만이 세계 시장을 선점(先占)하고 있는 현실에서 문화 상품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일본의 선진 기술이나 아이디어 상품의 수입에서는 일각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문화 산업 도입에 철옹성을 쌓고, 시기 상조라는 이유로 계속 유예하고 있는 것은 모순된 시각이라 본다. 따라서 일본 문화의 강점을 배우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문화와 접촉할 수 있도록 개방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 문화를 개방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의 비판적이고 합리적 수용 자세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우리 나라 문화 산업에 대한 현주소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우리 문화에 대한 자주성과 정체성이 확립될 때, 비로소 일본 문화 개방으로 인한 실(失)보다 득(得)이 많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높은 수준으로의 문화 변동은 문화 접촉을 통해 실현된다고 볼 때, 일본 문화의 개방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요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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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희망의 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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