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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여행] 전통문화와 문학의 향기가 넘치는 이문열작가의 마음속의 고향 두들마을

경상도

by 화천비타민나무 2014. 6. 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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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여행] 전통문화와 문학의 향기가 넘치는 이문열작가 마음속의 고향 두들마을

영양가볼만한곳  여성군자장계향/음식디미방

 

전통을 이어온 언덕 - 두들마을

두들마을은 조선시대 광제원이 있던 곳으로 언덕(두들)에 위치한 원이 있던 마을 이라고 하여

원두들. 원리라 부른다.

1640년 (인조18년)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들어와학문연구와

후학을 양성하는데 전념하였다 서게의 아들 중 넷째 숭일이 선업을 이었고

후손들이 더해져 재령이씨 집성촌이 되었다.

 

 

마을 옆 둔덕에는 석계 선생의 서당인 석천서당과 서계고택이 남아있으며 마을 앞으로 흐르는 화매천가에

서 있는 암석들에는 석계 선생의 넷째아들인 항재 이숭일이 새겼다는 동대.서대.낙기대.세심대등의

글씨가 아직도 남아있다.

최근들어 음식디미방 체험관. 정부인 장씨 유적비와 예절관 .음식디미방 교육관.전시관.광산문학연구소 북가페 등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석계고택은 조선 인조와 현종시대의 학자인 석계 이시명의 고택이다.

이 고택은 일자형의 사랑채와 안채를 흙담으로 막아 허실감을 메우고 뜰집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하였고

사랑채는 후면에 감실을 설치한 삼량가의 구조이다.

 

 

두들마을 한눈에 보기

음식디미방체험관. 석계고택.원리쉼터.정부인장씨 유적비 . 음식디미방 교육관

음식디미방 전시관. 석천서당. 석간정사. 유우당. 여중군자 장계향예절관. 유물전시관

광산문학연구소. 북카페- 두들책사랑. 두들광장 산책로 . 도사고택.주곡고택.음식디미방 관광자원화사업장

한시간 정도의 여유를 두고 둘러보면 좋다~ 

두들마을 해설사분과 동행하면 두들마을과 이곳 역사.인물에 대해 많은 정보를 들을수 있다.

 

 

 

두들마을 지명의 유래~

두들마을에서 유명하신 이문열작가님

시간 운대가 맞으면 이문열작가님도 직접 만나뵐수있다고 하네요~

 

 

 

음식디미방 체험관

음식디미방에 수록된 340여 년전 반가음식을 오늘날 입맛에 맞도록 재현해 내는 곳으로

정갈하고 고풍스런 전통한옥에서 음식디미방이 주는 여유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옛날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정성을 함께 느껴볼수있다.

음식디미방음식은 급히 익히지 않고 오랜시간을 통해 만들어지고 화학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아

담백하고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이곳에선 소부상과 정부인상을 맛볼수 있으며 전통다도 체험공간도 있다.

사전예약을 한후 이용가능하다

054-682-7764

 

 

 

음식디미방 문화관광자원화사업중의 일환으로 음식디미방 아카데미활동이 있다.

유교적 식문화 자취를 느낄수 있는 음식디미방을 활용하여 3대문화권 대표 음식문화를

계승.교육.체험할수 있는 공간조성으로 전통음식 계승발전과 관광객체험다양성 확보및 전통한식의

저변확대도모하기 위한 사업이다.

 

 

두들마을을 둘러보는데 마침 전통혼례를 치루는 장면을 볼수 있었다.

 

 

소설가 이문열작가의 작업실도 살짝 엿볼수 있었네요~

이문열(李文烈, 1948 ~ ) : 1948년 생. 1950년 고향인 경북 영양군 석보면에 이주함. 1953년 안동으로, 57년엔 서울로, 59년에는 밀양으로 이사함. 1961년 밀양 중학 입학했으나 그만두고 64년 검정고시로 안동고교 입학. 1965년 안동고교 그만두고 부산으로 이사, 이후 3년간 떠돌이 생활. 1968년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사대 입학. 70년 자퇴 후 사법고시 준비. 77년 대구매일 신춘문예에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입선되고, 1978년 동아일보 신춘에 중편「새하곡(塞下曲)」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의 소설의 특징은 탄탄한 구성과 문장의 탁월함으로,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 있다는데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들소」(1979),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1979), 「달팽의 외출」(1980), 「이 황량한 역에서」(1980), 「금시조」(1981), 「익명의 섬」(1982), 「칼레파타칼라」(1982), 「귀두산에는 낙타가 산다」(1982), 「장려했으니, 우리 그 낙일」(1984),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등이 있다. 장편으로는 「사람의 아들」(1979),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 가지 못하리」(1980), 「젊은 날의 초상」(1981), 「황제를 위하여」(1982), 「레터의 연가」(1983), 「영웅시대」(1984), 「미로일지」(1984),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8),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1989), 「시인」(1991) 등이 있다.

 

 

 

 

 

이문열기념관 현판

이문열의 소설은 매우 넓은 관심의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종교 문제와 예술관의 문제에서부터 분단과 이데올로기 갈등, 근대사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재들을 다루고 있으며, 그것을 형상화하는 기법 또한 현란할 정도로 다채롭다. 정통적인 리얼리즘의 기법으로부터 대체 역사나 우화의 형식 등이 그것들이다.

1979년 장편 「사람의 아들」로 제3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였으며, 1982년 중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제1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편, 유신과 제5공화국의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빗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반장 엄석대의 합법을 가장한 폭력, 규율을 가장한 폭력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폭력의 의미를 다시 보게 하였는데, 이는 군사 정권의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희화, 풍자한 것이기도 했다. 작가 본인이 밝히기를, 작품 전반에 나오는 국민학교 5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인 군사 정권을 실리에 따라서 허락한 6~70년대 미국 외교 정책이고, 후반부에 등장하여 엄석대를 박살내 놓은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경직되고 권위적인 이념'을 가리킨다. 세종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았으며, 1998년부터 부악문원의 대표로 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의 작품들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영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된 바 있다.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두들마을은 영양군의 동남부에 위치, 지역의 대부분이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이다. 두들이란 마을이름은 언덕위에 위치한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두들마을을 보려면 관노산을 올라야 한다. 그곳에서 풍수적 관점에서 산 아래에 펼쳐진 국세를 본다. 두들마을은 광노산(匡盧山)을 주산으로 중출맥한 용맥이 수천평의 용신명당(龍身明堂)을 만든 후 흘러내려 마을의 터를 만들었다. 이 마을 사람들이 뒷재라고 하는 이용신명당은 물 없는 명당(明堂)이요 힘이 뭉쳐진 도두(倒頭)요 혈처(穴處)다. 그러나 재령 이(李)씨들은 이 명혈(名穴)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특정인이 좋은 기운을 독점하지 않고 많은 후손들이 골고루 생기를 나누어 가지려는 혜안이 돋보인다.

 

내가 갔을때도 며칠전에 이문열작가님이 다녀가셨다고 하는데

일정만 잘 맞추면 만나볼수도 있다고 하네요~

 

 

 

두들마을의 참나무~

도토리

 

 

 

 

두들마을엔 세심대(洗心臺) 낙기대(樂飢臺) 동대(東臺) 서대(西臺)등 사대(四臺)라는 것이 있다. 이들 대는 힘차게 뻗은 일월산 낙맥의 정기가 모인 곳이다. 석보면 원리리 앞 두들 주남천(做南川)이 흐르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으로는 화매천 수십리 무수한 산곡(山谷)이 마을을 향해 감돌고 남으로는 기암괴석 절벽은 병암산이 병풍을 두른 듯 이곳 마을은 1676년 항재(恒齋)이숭일선생이 부친 석계(石溪)이시명(李時明)선생의 삼년상을 마치고 석보로 돌아와 선현의 업을 이어 학문을 탐구 할 적에 명명한 곳으로 각대마다 암석에 각자(刻字: 글을 새기고)를 하고 명인지사들의 유상지지로(遊賞之地)로 활용하던 곳이다. 특히 이들 사대 중 세심대(洗心臺)와 낙기대(樂飢臺)에 서면 전방의 촌락과 무수한 굴곡의 산야를 일목요연하게 감상할 수 있어 심신이 상쾌하여 배고픔을 잊고 마음을 씻을 수 있다는 뜻에서 대명(臺名)을 지었다고 한다.

 

 

영양의 두들 마을 한번 가보세요~.

 높고 커다란 참나무 그늘에 앉아있는 상상을 해본다.

 

두들마을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054-851-7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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