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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여행]단종의 슬픔이 전해지는 육지속의 작은섬 청령포

강원도

by 화천비타민나무 2012. 10.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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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슬픔이 전해지는 육지속의 작은섬 청령포에 들러본다.

청령포란?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 단종이 머무르던 곳으로,

아름다운 송림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서쪽은 육육봉이 우뚝 솟아 있으며

삼면이 깊은 강물에 둘러싸여 나룻배를 이용하지는 않고는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청령포 내에는 금표비와 단묘유지비, 망향탑, 노산대, 관음송 등 단종의 흔적을 알리는 유적들이 있다.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청령포는 수려한 절경으로 인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2008년 명승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청령포가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영월은 자주 와 봤지만.. 매번..일만 처리 하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영월의 숨은 매력을 볼수 없었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청령포로 향하는 마음은 설레임반..기대반이었다.

 

배를 타고 움직이면 바로 청령포로 도착된다.

청령포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하던 마음은..

청령포에 도착하면서..마음은 무거워진다.

아마도 단종의 슬픔이 가득한 곳이라 그런듯..

 

 

 

청령포에 발을 내딛으면서 모든 것이 귀찮아 졌다.

이곳의 사진을 담는 것조차..

너무.. 우울해지는 시간이.. 계속 이어져서..

한동안 소나무 그늘에 앉아 있다가

나왔던 곳이다.

조금더. 내마음이 커지면 와야할곳인가 보다.

 

 

 

 

 

1454년에 수양대군이 금성대군을 비롯한 단종의 나머지 측근들을 모두 죄인으로 몰아 유배하는 일이 일어나자

계유정난을 계기로 일부 신료들은 단종이 양위해야 된다는 공론을 세웠고 이는 통과되었다.

1455년(세조 1년) 단종은 수양대군의 측근 세력인 한명회·권람 등에게 선위를 강요받아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1456년 음력 6월에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응부·유성원 등 이른바 사육신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세조가 즉위한 이듬해(1456년)에 성삼문·유성원·하위지 등을 비롯한 집현전 학사 출신 관료들과 무인들은 연회때 별운검을 설치한 뒤

세조 3부자를 제거하고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가담자의 한명인 김질이 자신의 장인 정창손에게 이를 말하고,

정창손의 설득에 의해 사육신의 정변 기도를 폭로하여 계획은 좌절되고 만다.

그 바람에 1457년 단종은 그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다.

1457년 9월 금성대군은 배소인 순흥에서 단종복위계획을 세운다. 금성대군,

순흥부사 이보흠 등이 또다시 단종 복위 사건을 일으키자 세조는 금성대군을 사

사하고 단종도 같이 죽음을 내렸다. 또한 사육신과 관계된 여인과 재산을 공신의 노비로 분배하여 멸문시켰다

 

단종(端宗, 1441년 음력 7월 23일 ~ 1457년 음력 12월 24일, 재위 1452년~1455년)은 조선의 제6대 왕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고, 휘는 홍위(弘暐)이다. 1455년 숙부 세조의 정변으로 양위하였다가,

세조 측근들의 탄핵으로 강원도 영월군 청령포로 유배되었다가 암살되었다.

폐위되어 죽어서 시호를 받지 못한 채 노산군(魯山君)으로 불리다가 이후 중종 때에 복권 상소가 올려졌으나 거절당했고,

숙종 대에 가서야 성리학자들의 건의로 정종과 함께 묘호와 시호가 올려져

정식 시호는 단종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端宗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郭孝大王)이다.

세종의 장남인 문종과 현덕왕후의 외아들이며, 조선 왕조 최초의 왕세손이기도 하다.

1452년부터 1455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1452년부터 1453년까지 김종서가 섭정하였고

1453년부터 1455년 퇴위할 때까지 숙부 수양대군(훗날 세조)가 섭정하였다.

 

세조의 측근 공신들은 단종을 사사해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하였고, 삼사는 단종 사사를 주청하게 된다.

1457년 음력 10월 21일의 《조선왕조실록》에는 단종이 17살의 어린 나이로 자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일설에는 사약을 받았다고도 하고, 교살당했다고도 한다. 단종이 죽자 아무도 그의 시신을 매장하지 못하였으나,

영월군의 호장(戶長)인 엄흥도가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 매장지를 찾던 중,

눈보라가 치던 곳에서 사슴이 앉았다가 사라진 곳을 보고, 그 곳에 가매장하였다.

 단종을 매장한 뒤 엄흥도는 가솔들을 이끌고 영월을 떠났다.

공적으로는 단종의 추모가 금기시되었지만 사망 직후 정보,

이수형 등은 복상하고 3년상을 치루기도 했다. 사후 무속에서 신으로 숭배되기 시작하였다.

단종은 죽은 뒤 묘호도 없이 노산군으로 불리다가, 중종 때 사림에 의해 복권 논의가 나왔으나 거절당하였다.

사림의 한 갈래인 서인, 노론은 단종과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의 복권을 주장하여 중종과 효종 때 단종의 복권 여론을 조성했다.

사망한 지 224년 만인, 1681년(숙종 7년)에 우의정 김구의 상소로 노산대군(魯山大君)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년)에는 복위되어 묘호를 단종이라 하였다.

 

 

 

엄마 아빠랑 손잡고 나들이 온 아이들은 솔방울 가지고 논다..

다음에 오면 나두 저러고 놀아야지..

이번 청령포는 웬지 무거운 마음.. 가득해서..

머무는 동안 조금 힘들었던 곳이다.

 

 

 

 

단종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을듯한 높고 커다란 소나무..

 

 

 

울창한 송림과 단종의 슬픔을 간직한 육지속의 작은섬..청령포..

그.. 의미를 조금 알것 같다.

그리고 조금..느끼고 온듯하다.

 

 

관음송

 

망향탑

청령포가는길

 

■ 개장시간 : 09:00~18:00(입장시간은 17시까지)

■ 입장료 : 개인 - 어린이·청소년·군인 1,200원, 성인 2,000원 / 단체(30인 이상)

 - 어린이·청소년·군인 800원, 성인 1,600원

/ 군민(개인·단체) - 600·400원, 청소년·군인 600·400원, 성인 1000·800원 /

도선료 - 200원(국가유공자 및 배우자, 장애인, 65세 이상)

■ 주차장 : 무료

■ 문의 : 1577-0545(영월관광안내 콜센터), 033-374-4215 (영월종합관광안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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