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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여행]통일을 희망하는 역사의 현장 .멀지않은 과거로의 여행.그들을 만나러갑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유적공원

경상도

by 화천비타민나무 2013. 11. 12.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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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 전쟁의 아픔을 딛고 통일을 희망하는 역사의 현장

멀지 않은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본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인민군이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기습남침을 개시하여 서울은 3일만에 함락되었다.

국군은 미군 및 유엔군의 지원을 얻어 낙동강 교두보를 확보하는 한편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100만여명의 중공군 개입으로 다시 38도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국지전이 전개되었다.

전쟁중에 늘어난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1951년 부터 거제도 고현.수월지구를 중심으로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고

인민군 포로 15만 중공군 포로 2만 등 최대 17만 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는데 그중에는 300여명의 여자 포로도 있었다

1951년 7월 10일 최로의 휴전회담이 개최되었으나 전쟁포로 문제에서 난항을 겪었다.

특히 반공포로와 친공포로간에 유혈살상이 자주 발생하였고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사령관 돗드 준장이 포로에게

납치되는등 냉전시대 이념갈등의 축소현장과 같은 모습이었다.

1953년 6월 18일 한국정부의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을 기회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전쟁은 끝났고

수용소는 폐쇄되었다.

거제도포로수용소는 1983년 12월 20일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지금은 일부 잔존 건물과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 .막사.사진.의복등.생생한 자료와 기록물들을 바탕으로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다시 태어나 전쟁역사의

산교육장 및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조성되었다.

 

간간이 엄마 아빠께 들었던 6.25전쟁 그리고 피난 이야기~

멀고 먼 지난 시절만으로 치부해 왔었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본게 아니기 때문에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였던 역사속에서나 있었던

드라마와 영화로 그리고 6월달만 되면 생각나는 그런 아픈 우리나라의 분단현실로만 생각되는일..

그런데.. 거제도포로수용소와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을 보고나니.. 아~~~~~~~~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분단의 아픔..

그 현실..

북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실향민..

형제와 부모와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사실 지난두해동안 하나원이라는 건물 신축공사 현장에서  업무를 보는 동안에도

지금의 현실과 지난 역사에 대해 무관심했었다.

왜냐면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지금 내가 누리는 행복 그리고 따뜻함 편안함이 모두 지난 역사와 관계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아팠다~

그시절에 내가 태어나지 않은것이 얼마나 다행인가..하는 철없는 생각만 반복해서 들었다.

 

 

 

몇번의 거제도 여행을 했었지만

매번 이곳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밥먹으러 다녀왔을뿐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는 직접 관람을 해보지 않았었다.

밀고 밀어두었던 숙제를 펼쳐보는 기분으로 다녀온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하하호호 하면서 볼수 있는 곳은 아니였다..

보는 내내 마음을 짖누르는 무거운 역사속의 아픔들이 있었기에~

 

 

다행이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철이 없지 않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다시 한번 알기위해 가족나들이 한 팀들이 많이 보였기 때문에

공원으로 잘 조성된 이유도 있겠지만 한번쯤 꼭 봐야할 이유가 있다는걸 알기때문인듯하다.

 

 

 6.25 참전 16개 국의 국기와 UN 국기가 계양되어 있는 분수광장

 

 

흥남 철수작전 기념비

굳세어라 금순아의 가요 역사적인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김 백일 장군 동상

 

김백일 장군’. 1950년 12월 흥남철수작전 지휘관인 미군의 아몬드 장군을 설득해

북한 피난민 10만여 명을 미군 함정에 태워 무사히 거제도로 구출한 한국전쟁의 영웅이다.

 

 

 

 흥남 철수작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조리호를 제외한, 다른 함정들은 장기보존상태로 들어 갔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갑작스런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 발발과 함께 현역에서 활동하던 미조리호는 한국으로 급파되었고, 나머지 함정들도 급하게 현역으로 복귀하게 된다.

 

아이오와, 뉴 저지, 위스콘신 3척의 전함은 한반도 해역에 머물며, 16인치(Inch) 함포로 지상군을 지원했다. 당시 북한군과 공산진영은 항공기를 볼 수 있는 공중폭격과 달리, 포탄만 날라오는 미 해군 전함의 함포사격을 가장 두려워했다. 한국전쟁 당시 최대의 철수 작전이었던, 흥남 철수 작전에서 아이오와급 전함은 강력한 포격으로 철수하는 유엔군과 피난민들을 지원했다.

 

탱크전시관

북한군의 남침 선봉에 섰던 소련 제 T-34 탱크모형속에서 6.25 한국전쟁 및 포로수용소의

역사적 현장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곳이다.

 

 

탱크전시관을 올라가다보면

좌우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구분되어 있다.

 

 디오라마관

 

 

 거제도포로수용소의 배치상황.생활상.폭동현장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십미터 정도의 디오라마관을 보는 동안 거제포로수용소의 시간여행을 떠난듯한 느낌......

 

 

북한군의 남침과 피난민의 모습을 벽화에 담았다

 

 

 

 6.25 역사관

전쟁발발에서 휴전에 이르기 까지 한국전쟁의 참전 16개국 현황. 피해현황.

전쟁속 삶의 모습 등이 재현된 전쟁역사의 살아있는 교육장이다.

 

 

대동강 철교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후퇴하게 된 피난민들은 폭파된 평양의 대동강 철교를 타고 건너며

자유를 향한 필사적인 피난길에 올랐다

 

 

 

M.P 다리

헌병초소가 지켜선 다리는 포로 출입의 주요관문이었다.

긴장된 전쟁의 그림자가 휘감고 있는 이곳을 통과하면 포로들의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포로생활관

제네바협약에 의거하여 자치적으로 수용소 생활을 영위했던 포로들의 일상생활

모습을 당시의 사진과 모형.영상자료를 통해 엿볼수 있다.

 

 

 

 

기념촬영 포토존

 

 

 

 

포로 폭동체험관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졌던 친공포로들의 폭동과 친공.반공 포로들간의 격동장면이 최첨단 복합연출기법으로

재현되어 긴박감과 위기감을 생생하게 느낄수 있다.

 

 

 

포로 설득관

포로교환에 앞서 진행되었던 송환심사 과정과 결과 등 역사적 사실을 영상과 함께 다양한 연출기법으로 만날수 있다.

 

 

 

 

철모광장

포로수용소 유적관 기념청동 조형물로 6.25 참전 16개국의 지도와 국기를 담고 있다.

 

 

포로 귀환및 송환

휴전과 함께 송환희망 포로의 북송이 마무리되었으며 송환을 거부한 포로들은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위령탑에 누군가 먼저 놓고간 국화꽃 한다발이 보였다.

거제도포수용소유적박물관에는

이외에도 야외막사. 잔존유적지 등이 있으며 포로사상대립관.여자포로관.포로수송.야외공연장등

각각의 테마로 이루어진 곳이있어 이동동선을 따라 보게 되면

조금이나마 현재의 기쁨과 행복에 플러스가 될것 같다.

지난 역사를 알고나면 지금의 나가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인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생기게 된다.

 

아이들의 체험학습장 또는 견학코스로 필수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 하는 민족전쟁의 아픔입니다.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평화파크

경남 거제시 계룡로 61 ( 고현동)

055-639-0625

http://www.pow.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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